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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과 섹스의 차이

작성자 여性아카데미(ip:)

작성일 2023-01-25

조회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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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오늘 날에는 성(性)이라는 글자를 떠올렸을 때 모두가 섹슈얼한 뉘앙스로 생각하게 됩니다. 즉, 성(性)이 곧 섹스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의 경우 성(性)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무언가 재미있고 즐거운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고, 여자의 경우 거부감부터 갖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인간의 성(性)은 인간의 마음 안에서 작용하고 있는 성마음을 이야기 합니다. 이 성마음이 작용하면서 발생하는 에너지가 마음에 공급되면서 마음이 작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性)은 인간의 마음을 만드는 근본적인 작용이며, 성(性)을 성인식하고, 성인식된 성(性)을 성기억하고, 성기억된 성(性)을 생각으로든 외부로든 성표현하는 모든 것을 이야기 합니다. 이를 성마음의 성심리라고 합니다.


이때 섹스는 말 그대로 성행동일 뿐입니다. 이 성행동은 성마음의 성심리가 작용한 뒤 그것이 마음의 작용과 결합되어 외부로 표현되어지는 극히 일부로서, 성적행동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성(性)은 인간의 마음이 작용할 때 모든 근본이 되는 작용이자 에너지이고, 섹스는 성마음과 마음이 작용하여 결과로서 나타나는 모든 행동들 중 극히 일부일 뿐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때 발생하는 에너지가 일반적인 에너지보다 워낙 강력하다보니, 사람들은 그저 성적 행동일 뿐인 섹스에 큰 의미를 두게 되고, 섹스가 곧 성(性)의 모든 것이라고 착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오로지 마음에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자 전부라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남자는 섹스에서 강력한 즐거움을 갖게 되기 때문에 그 이면에서 섹스로 인하여 -성에너지가 발생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이 파괴된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 강력히 파괴될수록 마음에서는 그 크기만큼 더욱 즐겁게 느껴진다는 것을 모르고, 이왕이면 더 즐거운 것, 더 쾌락적인 것을 추구하려 합니다.


또한 여자는 섹스에서 강력한 즐거움을 갖거나, 강한 거부감을 갖는데 이것은 여성이 마음의 감정을 가장 중요시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특히 여성은 섹스에 대해 마음의 감정을 보완하는 수단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상처로 인하여 마음의 감정이 힘든 상태에서 섹스로 이를 보완해 본 여성이라면 갈수록 섹스의 즐거움에 빠져듭니다.


반면 섹스를 통해 마음의 감정을 보완해본 적이 없거나, 보완을 해야 할 정도로 상처가 크지 않은 여성은 섹스 자체에 무관심하거나 거부감을 갖습니다. 결국 이 말은, 남자와 여자가 모두 섹스에 대해서 마음에서 느껴지는 대로만 생각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성마음은 그저 에너지를 생성하여 공급하는 작용만 할 뿐이지 그 자체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곡된 섹스의 관념을 갖고 성(性)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남자에게든 여자에게든 강력한 -성에너지가 발생하여 몸과 마음에 데미지를 입히는데, 일반적인 여성은 그나마 마음의 감정이 사랑을 기준으로 하여 섹스에 대해 어느 정도 통제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섹스는 거부합니다. 이것은 마음이 건강하게 기능하는 일반적인 여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편 남자는 -성에너지가 마음에서 무조건 즐거운 기분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상황과 환경, 조건 등이 되었을 경우 어지간해서는 섹스를 거부하는 일이 잘 없습니다. 이것은 남자와 여자의 성마음에 따른 성습관의 작용이 달라서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섹스에 대하여 남자는 큰 트라우마가 있지 않은 이상 대체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입니다. 또한 섹스와 성기능에 대하여 남자는 자신의 인생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여자는 섹스에 대하여 감정을 위한 부수적 수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무관심하거나, 수동적이거나, 거부감을 갖기도 합니다.


이것이 섹스에 대해 오로지 마음에서 느껴지는 대로 생각하기 때문인데, 이로 인하여 파생되는 수많은 문제 중 가장 큰 문제는, 성(性)의 주체가 완전히 정반대로 바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근본적으로 남자의 성마음은 성(性)의 행복을 실현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작용하기 때문에 그 대상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섹스를 하는 대상에게 모든 것을 맞춰줄 수 있는 것입니다. 대상이 어떤 사람이든 자신에게 성행복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여성이라면 모든 것을 맞춰주면서 함께 성행복을 누리는 것이 남자의 성마음이 가진 목표입니다. 이것이 충족되면 남자는 그 에너지가 마음에서 대상에 대한 열정으로 나타나면서 그 대상을 무조건적으로 지키고 보호하려 합니다. 그러나 남자의 마음은 성마음의 에너지를 받아서 스스로 행복의 감정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의 마음과 성마음은 자기 자신이 아닌 대상을 향해서 움직입니다.


반대로 여성의 성마음은 여성 자신의 마음에 성에너지를 공급하여 스스로 행복의 감정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몸에도 성에너지를 공급하여 스스로 성행복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어차피 몸의 감각을 느끼는 것도 마음의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성의 성(性)은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며, 여성이 이 성(性)을 건강하게 운용할 때 그 여성을 보호하고 맞추는 남자가 여성에 의해서 함께 행복과 성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性)의 작용이 오늘 날에는 모두 섹스의 관점으로 해석이 되고 있고, 그러다보니 섹스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남자가 성(性)의 주체가 됩니다. 남자는 자신의 섹스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섹스를 하고, 반대로 섹스에 무관심하고 수동적인 여자는 자신의 성(性)의 주체가 되지 못할뿐더러 어째서 주체가 되어야 하는지 그 필요성조차 알지 못합니다. 즉, 남자와 여자의 성(性)이 정반대로 역기능을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자신의 섹스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성적매력을 가진 여자에게 지대한 관심을 주게 되고, 여자는 그러한 관심을 받기 위해 남자의 섹스욕구를 충족하는 대상이 되고자 합니다. 한마디로 남자의 성(性)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되었고, 여자의 성(性)은 상대를 위한 것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본래 마음과 성마음은 정반대로 작용하는데, 성마음의 작용은 느껴지지 않다보니 성(性)에 대한 것도 마음에서 느껴지는 대로 따라가게 된 것이고, 그래서 성마음이 역기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지금은 기본적으로 남녀 모두 의 몸과 마음에 -성에너지가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것이 수많은 심리문제와 심리장애를 발생시키고 신체화 현상을 야기합니다. 그래서 인간사의 모든 대소사의 문제는 성(性)의 왜곡에서 비롯된다고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성마음의 성에너지는 일반적인 마음의 에너지보다 훨씬 강력하기 때문에 이때 작용하는 상처와 스트레스는 일반적인 상처와 스트레스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증폭이 됩니다. 예를 들어 남자가 동성친구랑 경쟁을 할 때, 이성이 보는 앞에서 경쟁을 하면 그 경쟁이 훨씬 치열해지고, 여자가 동료 여자를 시기하고 질투할 때, 이성이 그 여자를 칭찬하면 그 여자에 대한 시기심과 질투심이 훨씬 강력해집니다. 물론 이처럼 성(性)이 감정을 증폭시키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는 무려 한 가정을 이루는 결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性)은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강력한 파괴의 에너지가 되기도 하지만, 강력한 행복의 에너지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우리가 성(性)과 섹스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면 거기에서 이미 발생된 문제들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다시 원래대로 회복하려야 할 수가 없습니다. 근본적인 문제가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모르고 그저 나타나는 현상만을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섹스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어느 누구도 성마음의 관점으로 접근하지 못합니다. 문제는 성마음의 작용에서 비롯되는데, 성마음의 작용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표면적으로 보여 지는 섹스에서 찾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섹스심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섹스에는 심리가 없습니다. 섹스는 성마음과 성심리, 그리고 마음과 심리가 작용하고 난 결과로서 표현되어지는 성행동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즉, 성심리와 심리가 작용하고 난 결과물이 섹스입니다. 이를 마음과 성마음의 관점에서 분석해보면 마치 시들어서 빛을 잃은 나무를 회복시키고자 할 때, 뿌리를 치료하고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뭇잎이 빛이 나기를 바라며 한 잎, 한 잎 공들여 닦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나무는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아 계속 죽어가게 되는데, 그렇게 빛을 더욱 잃어가게 되면 이제는 나뭇잎 하나하나에 녹색물감을 바릅니다. 그래 놓고서 나무가 회복했노라고 말하는 것이, 섹스문제에 대한 섹스심리로서의 치료방법입니다.


가령, 부부간 섹스문제를 회복하려고 할 때 근본적으로 아내의 섹스태도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틀린 말은 아닙니다. 여성이 성(性)의 주체가 되면 모든 섹스문제는 다 해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방법에 있어서 아내가 섹스를 즐겨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뭇잎에 녹색물감을 바르는 것과 똑같습니다.


아내가 성(性)의 주체가 되면 섹스를 인식하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아내는 섹스가 없어도 행복해지고, 섹스가 있어도 행복하며, 자신이 성(性)의 주체가 됨으로써 섹스를 통해 행복을 만들고 그에 따라 섹스의 즐거움은 부수적으로 따라옵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내가 여성에게 작용하는 성마음의 순기능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체화시켜야 합니다. 이를 위해 자라면서 오랜 시간에 형성된 '성(性)과 마음이 결합된 성습관'이 분리되어야 하고, 분리시켜놓은 성(性)을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자신만을 위해 활용할 수 있도록 다시 오랜 시간 반복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고 아내가 의식적으로 섹스를 즐기려고 하면, 감정에 의해서 큰 상처가 발생하거나, 전혀 소용이 없거나, 아무런 통제장치 없이 섹스쾌락에 훅 빠져들어 갑니다. 이는 마음과 성(性)이 분리되지 못했기 때문에 성(性)을 통제하는 마음이 굳건하여 섹스를 즐기지 못하거나, 섹스를 즐기기 위해 통제장치인 마음이 전부 부숴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로 이런 솔루션을 제안하는 이들은 남성이거나, 마음이 전부 무너진 여성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성(性)과 섹스를 구분하지 못했을 때 수많은 문제점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그 문제점을 해결하려 할 때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발생시켜 몸과 마음이 참담하게 무너지는 결과를 만들게 됩니다. 이런 오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이 정확한 원리를 알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여러분 개개인 모두가 올바른 성관념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적어도 그럴듯한 타인의 말이나 왜곡된 사회적 통념에 휩쓸려 스스로를 무너트리지 않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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